12월의 둘째 주일입니다. 시애틀은 곳곳에 홍수가 났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비가 많이 오는 도ㅍ 시이지만 올해는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비가 내려서 감당이 되지 않았나 봅니다. 이 비 가운데서도 한 주간 특별 새벽기도에 열심히 참석하고, 섬겨 주신 형제가 있어 감사합니다. 형제와 제가 드린 기도의 향기가 하늘에 닿았기를 기도하며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합니다.
이번 주 형제와 나눌 말씀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는 주제입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준비하며 예전 제가 교회 땅에 살면서 닭을 키우던 생각이 났습니다. 그 시절에 최대 10 마리 정도까지 키웠었는데, 그때 제가 닭으로부터 많은 교훈을 얻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성육신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닭들이 말을 잘 안 들었습니다. 사람 말을 못 알아 들으니 당연하겠지만 자꾸 옆집에 몰려가서 그 땅을 헤집어 놓기도 하고, 또 길가까지 가서 지나가던 개들의 공격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집 근처에서 놀던지, 아니면 안전한 닭장에만 있으라고 해도, 어떻게든 나와서 여기저기 다 돌아다니다가 잡아먹히기도 하고, 옆집 고양이에게 혼나기도 하였습니다.
사람 말을 못 알아들으니, 제가 안타까웠지만, 그렇다고 제가 닭이 되어 그 닭들 가운데 살고, 그들의 먹이를 먹고, 그들의 잠자리에서 자고, 그들에게 이렇게 하면 죽을 수 있으니 안전한 곳에 가서 있으라고 말하겠습니까?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제가 그 닭들을 그만큼 사랑하지도 않을뿐더러, 그만한 가치가 있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엄청난 희생을 예수님은 감행하셨습니다. 사람이 닭으로 태어나는 것보다 더 큰 희생이 바로 신이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말을 못 알아들어 죽음의 길로 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신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서 우리 가운데 사시며, 우리의 언어를 쓰시고, 우리가 거하는 장소에 거하시는 것이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된 사건입니다.
우리가 그만큼의 가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그만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의 깊이를 오늘 느껴 보시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예수님이 치르신 희생이 결코 작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늘 다시 기억되기를 기도합니다. 형제와 저는 예수님께서 그 큰 희생과 사랑을 베푸시며 구할 만한 가치가 없었음에도 그 값을 치르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죽음으로 가는 길에서 영생으로 가는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묵상하며 나는 예수님이 신의 자리를 내려놓고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구원해 내신 귀한 존재임을 다시 확인하는 감사의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나는 예수님이 비싼 대가를 치르고 구원하신 귀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 세상을 축복하는 축복의 통로로 살겠습니다.” 이렇게 결단하는 형제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