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두 번째 주일입니다. 벌써 한 주가 지나갔습니다. 지난 주간 공동체 담당 목사님들과 LA에 잠시 다녀 왔는데 따뜻한 햇볕을 받을 줄 알고 갔으나 비만 잔뜩 맞고 왔습니다. 그래도 목사님들과 하나 되는 좋은 시간을 가졌고 올해 그 마음으로 잘 섬길 방향과 비전을 공유하고 오는 시간이었습니다. 한 마음된 목회자들과 함께 형제와도 한마음 되기를 기도하며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합니다.
이번 주 형제와 나누는 말씀은 홍해 앞에 선 모세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적을 베푸셔서 홍해를 가르셨고 그 가른 홍해를 질퍽거리는 땅이 아니라 아스팔트 깔아 놓은 땅 같이 마른 땅을 걸어서 건너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기적의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 가를 깊이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그저 주일학교 아이들의 성경 이야기를 흥미 있게 듣고 그게 사실인가 아닌가 따지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가 오늘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되는가를 생각해 보는 이번 주일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홍해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정적인 언어들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애굽에서 잘 살고 있는 우리를 끌어내서 여기서 죽게 했다. 모세 너 때문이다. 왜 우리를 끌고 나와서 이 고생을 시키고 결국 물에 빠져 죽거나 아니면 애굽 사람들에게 죽는 두 길밖에 없는 상황에 오게 하였다.” 이것이 그들이 불평하는 말의 요지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마음이 간사한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진짜 자기 자신을 돌아본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그들은 사람의 가치조차 없이 물건 취급받던 노예였습니다. 인구가 너무 늘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내아이를 낳으면 물에 빠져 죽이게 해도 그것에 대해 항변조차 할 수 없었던 삶을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출애굽, 해방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던 꿈이었고, 그 조상들은 그 꿈을 꾸기만 하며 죽어갔습니다.
그러나 기적같이 하나님은 그들에게 자유를 주셨고, 더 나가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살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홍해 바다 앞에서의 고백은 “하나님 단 하루라도 자유로운 백성으로 애굽의 백성과 그들의 신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 살다 죽게 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 자리에서 우리를 구원하셔도 감사하고, 그렇지 않아도 감사합니다.” 이것이 그들의 고백이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홍해가 갈라지듯이 우리의 생각의 흐름과 그 생각을 쏟아내는 우리의 언어에 이 돌파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그 불평과 원망만을 하는 생각의 흐름 속에 계속 살면 우리는 홍해 앞의 이스라엘 사람들과 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나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는 잊어버리고 지금 당장 처한 환경에 대한 불만만 쏟아내는 삶, 그 삶 속에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야 합니다. 홍해의 흐름이 끊어졌듯이 그 불평과 원망의 흐름이 끊어지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