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정겨운 세상을 꿈꾸며


가을의 풍경이 깊어 가는 10월의 둘째 주입니다. 올해는 비도 늦게 오기 시작해서 단풍을 더 오래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맑은 공기와 함께 펼쳐지는 가을의 풍경이 좋은 계절입니다. 비록 생활에 많은 제약을 받고 있고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고 하지만 이 모든 것 위에 계시고, 오늘도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기억하며 기쁨으로 한 주를 시작합니다.


이번 주 가스펠 프로젝트의 말씀은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한 사람을 그 무엇보다도 귀하게 여기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도하며 형제와 함께 이 말씀을 나눕니다.


예수님은 베데스다라는 연못에 가게 됩니다. 그곳은 물이 가끔 움직이는데 그때 제일 먼저 그곳에 들어가면 병이 낫는다는 전설이 있어서 많은 병자가 몰려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은 서로가 견제하며 물이 움직이는 것을 기다리는 살벌한 장소였을 것입니다. 38년 된 병자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났을 때 자신을 도와 물이 움직일 때 자기를 좀 물에 넣어 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으로 보아 자신을 도와줄 가족도 함께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같이 있다가 기회를 계속 놓치면서 원망을 쏟아내어 가족도 떠났을지도 모릅니다. 그곳은 사랑과 배려, 섬김과 양보 등의 사람 사는 세상의 단어는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그 병자를 고치시고 침상을 들고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누워서 꼼짝도 하지 못하던 그 병자가 그 명령에 따라 일어나고 자기가 누워 있던 그 침상을 들고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기적 중의 기적이고 모든 사람이 할렐루야를 외치며 하나님을 찬양하여야 하는 것이 마땅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이 안식일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물건을 들고 걸어가는 것을 자신의 법으로 금지하여 놓았습니다. 안식일에는 쉬어야 하는데 그날에 물건을 들고 다니는 것은 일이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람, 특별히 노예들, 그리고 농사를 지을 때 사용되는 가축들을 위한 하나님의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날은 자신을 지으시고 자녀 삼아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예배하는 날로 보낼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특별 배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제도가 하나님의 사랑과 배려는 사라지고 법만 남았습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그날 침상을 들고 걸어 다니게 되었는가는 중요하지 않고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서 병을 고치신 예수님이 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놓치는 것이 이런 것이라 여겨집니다. 사람이 가장 중요한데 사람이 만들어 놓은 법을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법을 지키는 것보다 한 사람을 고치고 그 사람을 회복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셨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안식일임을 깨우쳐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사람이 낫는 것보다 그 사람이 법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아마 병 고침 받은 사람이 자신의 가족이 아니라 또 한 명의 경쟁 상대이고 없어져야 하는 대상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우리의 마음에 이 사랑과 배려가 있습니까? 마음속 가득 정죄할 거리만 채워 놓고 무슨 꼬투리를 잡아 저 사람을 잡을까 생각하는 동물의 세계가 아니라, 사람 사는 정겨운 세상에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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