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의 더위가 기록을 세운 한 주였습니다. 한국의 더위에 비하면 덥다고 하기에 미안한 더위이지만 워낙 높은 기온을 경험하지 못하고 사는 시애틀 사람들에게는 온갖 뉴스와 미디어에서 호들갑을 떨만한 더위였습니다. 저는 지난주 한국에 3박 4일 일정으로 다녀 왔습니다. 여름에는 한국에 가는 것을 피하고 있지만 이번에는 특별한 경우라 짧은 시간을 내서 다녀왔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하여 주신 형제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새로운 달, 8월을 시작합니다.
얼마 전 서울 온누리교회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8월 2일이 고 하용조 목사님의 소천 6주기인데 추모예배에 설교를 맡아 달라는 연락이었습니다. 저야 하 목사님과 온누리교회로부터 받은 은혜가 크기 때문에 당연히 가서 섬겨야 하지만, 벨뷰 캠퍼스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과연 다녀오는 것이 맞는가? 많이 고민하고 사양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꼭 섬겨 주었으면 좋겠다는 부탁에 짧은 일정으로 한국에 다녀오게 된 것입니다.
한 달여 동안 추모 예배의 설교를 준비하며 하 목사님과 온누리교회, 그리고 형제교회를 생각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가 오늘 저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이고, 그 은혜는 하 목사님과 온누리 교회를 통해 왔다는 것을 절대 부인하지 못하는 사실입니다. 하 목사님을 만나고 훈련받아 목사가 되어지고 형제교회에 부임하여서도 저에게 멘토로 든든한 후견인으로 서 계셨던 목사님을 생각하며 새삼 정말 감사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놀랍도록 크다는 것을 다시 느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하 목사님이 저를 부르셨던 그 나이가 지금 되어 보니 목사님께서 저에게 얼마나 큰 모험을 하셨는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32 살 젊은 나이에 학생부와 청년부만 맡아서 사역했던 터라 심방을 어떻게 하는지, 장례식은 어떻게 하는 건지 전혀 경험도 없었고 알지도 못하던 사람을 목사로 부르고 따라주고 격려해 주고 코치해 주셨던 많은 평신도 성도들이 함께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제가 자랄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형제와 제가 앞으로 더욱 힘쓰고 노력해야 하는 일이 바로 젊은 목회자들을 잘 키워내는 것입니다. 좋은 목사는 좋은 교회와 좋은 성도가 키워 냅니다. 그러면 그 지역이 변하고 열방이 변합니다. 온누리교회가 저에게 그렇게 하여 준 것처럼 형제교회도 그렇게 좋은 목회자들을 키워내는 교회이기를 꿈꾸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