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을 앞둔 주일입니다. 이번 주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에 성탄의 깊은 의미를 다시 세기며 예수님을 생각하는 날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무엇을 받을까 무엇을 줄까를 생각하기보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이 하나님께 가장 큰 선물이 될까를 다시 생각하며 그런 마음으로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 형제와 제가 되기를 기도하며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2000년 전 지금의 삶보다 더 형편없는 땅에 사람이 되어 보호받아야 하는 아기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좋은 시설에서 태어나게 할 수 있는 부잣집 부모도 아니어서 탄생의 이야기는 아름답기보다 비참하다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맞습니다. 그런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왜냐하면“임마누엘”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하시기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모습으로 사람들과 함께 사람들의 제도 안에 살다가 사람이 만든 형틀에 달려 돌아가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짧은 삶 가운데 하나님의 권리를 주장하거나 그 힘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묵묵히 그 길을 가시다가 마침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음의 길을 가셨던 분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묵상하다가 타 문화권에 나가 있는 선교사님들의 삶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선교지는 대부분 우리가 사는 삶의 질보다 현저하게 떨어지는 곳이 많습니다. 그곳에 지금의 삶을 버리고 간다는 것은 정말 큰 희생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분들이 선교지에 살기를 결단하고 그곳에서 한 사람의 현지인으로 산다는 것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의 모습으로 산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예수님이 치르신 희생이 사람들의 그것과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가진 것을 다 내려놓고 오지의 땅에 들어가 그들과 하나가 되어 살고 있다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이 아니라면 가능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예수님이 오지 않으시고 대신 인간들에게 제물을 보내서 죄를 씻게 하셨다면 의미가 있었을까요? 직접 오시지 않고 천사를 한 명 보내서 그 자리에서 죽게 하셨다면 인류의 구원이 과연 이루어졌을까요? 예수님이셨기 때문에 의미가 있고,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 것이지 그것이 돈이나 다른 대체의 것으로 해결될 것이 아니었습니다.
선교지에 사람이 가지 않고 대신 돈을 보내면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질까요?“임마누엘”의 사건이 일어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이 찾아갔기에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이 함께 그 땅에 들어갔고, 그 땅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땅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땅에 선교사로 사시는 형제에게 묻습니다. 형제가 찾아가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 삶에“임마누엘”의 사건을 일으켜야 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물론 돈으로 도와야 할 사람 많습니다. 그리고 찾아가는 것이 짐이 될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돈보다 더 귀한 것이 형제와 함께 하는 것이라면 마땅히 함께하여 주는 것도 형제와 제가 하여야 하는 삶일 것입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다시 생각하며 우리의 삶이 누군가에게 힘과 용기가 되어 준다면 그 길을 기꺼이 기쁨으로 가게 되기를 기도하며 성탄을 맞습니다.“Merry Christ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