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

시원한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버지니아에 머무는 동안에는 아직 여름이 한창이었습니다. 습도가 높아 밤에도 더웠지만, 시애틀에 돌아오니 상쾌한 바람과 선선한 날씨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잠시 다녀와 집으로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좋은데, 문득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언젠가 본향의 집으로 돌아가는 날에는 얼마나 더 좋을까?” 그래서 오늘도 그곳을 바라보며, 본향에 돌아갈 준비를 잘하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새롭게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도 이 땅의 삶에서 주님 주시는 행복을 누리시고, 언젠가 본향에서 주님을 기쁨으로 만나게 되기를 기도하며 한 주를 시작합니다.

이번 주에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생각해 봅니다. 안디옥에서 처음 불린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당시 조롱과 멸시가 담긴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 이름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닮은 삶으로 그 이름의 가치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통해 복음은 오늘 우리에게까지 이어졌습니다.

얼마 전 제가 방문했던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에서도 그런 모습을 보았습니다. 폴란드는 천주교의 전통과 영향력이 매우 강한 나라입니다. 그래서 개신교는 이단으로 여겨지고, 그 사회에 뿌리내리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우크라이나 역시 정교회의 전통이 매우 강한 나라입니다. 곳곳에서 크고 아름다운 정교회 건물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개신교 교회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취업이나 결혼과 같은 사회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쟁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전쟁이 시작되자 수많은 사람이 집을 잃고 거리로 내몰렸습니다. 그때 크고 아름다운 건물을 가진 정교회가 모든 필요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사이, 작은 개신교회들과 세계 곳곳의 그리스도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물질을 보내고, 사람을 보내고, 기도를 보냈습니다. 상처 입은 사람들을 찾아가고, 먹을 것을 나누고, 기도를 보내면서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오며 그곳에서 위로와 안식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사도행전 2장의 “칭찬받는 교회”를 다시 생각했습니다. 교회가 칭찬받은 이유는 크고 아름다운 건물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어려운 사람에게 다가가고, 가진 것을 나누며, 함께 울고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도 그랬습니다. 어려웠던 시절, 선교사들은 학교와 병원을 세우고 고아와 과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았습니다. 그리고 절망 가운데 하나님을 찾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람들은 교회를 통해 사랑을 경험했고, 그 사랑을 통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여, 사람은 자신을 잊지 않고 찾아와 준 사람을 오래 기억합니다. 우리가 건네는 작은 도움도, 짧은 기도 한 마디도 절대 작지 않습니다. 목마른 사람에게는 한 숟가락의 물도 생명입니다. 우리의 작은 헌신이 누군가에게는 다시 일어설 용기가 되고, 우리의 기도가 누군가에게는 하나님을 다시 기억하게 하는 은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자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나는 어떤 ‘예수쟁이’로 기억되고 싶은가?” 우리의 삶을 통해 누군가가 예수님을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보다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 칭찬받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갑시다. 우리의 삶이 누군가에게 복음의 흔적이 되고, 우리의 이름보다 예수님의 이름이 기억되게 합시다. 그리고 마침내 본향의 집에 돌아가는 날,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그 칭찬을 바라보며 오늘도 예수님을 닮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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